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은행나무 침대 (문단 편집) == 한국영화사에서 지닌 의미 == 이 영화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럿 있다. 첫번째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영화임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 [[검열삭제|초반에 나오는 장면들과 신체가 절단되는 장면들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기 힘들었던 SF 판타지 장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6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으며, '[[전생]] [[신드롬]]'이 단순한 대중문화의 한 흐름에서 사회적 현상으로 퍼지기 되었다. 일전에 [[정우성]], [[고소영]]의 [[구미호]]가 제작되었지만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에, [[강제규]]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 당시 은행나무 침대가 만약 흥행에 실패한다면 한국에서 판타지 장르의 영화가 제작되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두번째는 최초로 금융권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당시에는 영화 제작사에서 자체로 영화를 제작했던지라 흥행성패가 어떠냐에 따라 영화사가 흥하냐 망하냐가 달릴 정도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씨네가 어마어마한 채무를 지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당시엔 SF 장르의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전이라 많은 위험부담이 따랐기 때문에 주연 배우들만으로 투자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일신창투[* 후에 튜브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대작 영화를 제작하게 되는 투자회사이다. 신씨네와 함께 영화 제작 및 투자관계에서 파트너십을 유지해오기도 했다.]에서 17억 원을 지원함으로써 국내 영화 최초로 금융권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영화가 되었으며, 다행히 흥행에 성공하여 수많은 금융권 회사와 대기업에서 한국영화에 투자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6년 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성소재)의 처참한 흥행 실패까지 한국영화는 눈 먼 돈에 힘입은 큰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 성소재의 실패 후로는 시스템이 더 견고해졌다.] 세번째는 '한국형 블럭버스터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시발점이었다는 점이다. 흔히들 [[쉬리(영화)|쉬리]]가 한국 최초의 블럭버스터 영화라고 하지만,[* 출연배우와 관객들에게 [[흑역사]]를 안겨준 [[퇴마록(영화)|퇴마록]]도 있었다.] 제작 당시에는 한국영화는 '방화'라고 불리워졌고, 할리우드식 기술과 연출력이 최고라고 믿어왔던 영화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은행나무 침대>는 정신나간 투자였다. 제작초기만 하더라도 '이런 게 흥행하겠어?', '돈이 남아도는 건가?' 식의 비아냥만 들었으나[* 신현준이 드라마 '바람의 아들'을 촬영하면서 다른 영화를 포기하고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할 적에 일부 충무로 관계자들이 '저딴 영화에 출연하다니...미쳤네'라며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다.] 막상 개봉한 이후로는 '우리의 기술로도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영화 만들수 있다'(실제 한 평론가의 평)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바로 이 영화였다. 또한 당시만 해도 주요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및 [[미국]] 등등의 시스템에 발달된 나라에 직접 가서 후반작업을[* 믹싱 및 사운드 삽입등등 및 편집.] 했었는데, 은행나무 침대 이후 기술발달로 이제는 국내에서도 후반작업이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 영화도 후반작업을 호주에서 했다. 그래서 개봉시기가 1995년 크리스마스 시즌에서 1996년 설연휴로 미루어 진 것이다. 이 영화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같은 화제작들 대부분은 호주에서 후반작업을 거쳤다. 그 당시 충무로에서 후반 작업까지 마무리 할 수 있는 여건이 그다지 없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특수효과 및 특수분장, 편집을 담당한 제작진들은 지금 한국영화가 기술적인 퀄리티가 높아지게 된 주역이자 '1세대 제작진'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윤예령]], [[정도안]] 씨가 있는데, 특수분장을 담당한 윤예령 씨는 본래 배우로 활동하던 중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80년대 후반 '[[우담바라]]', '[[구로아리랑]]'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알려 화장품 광고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신인 여배우는 의무적으로 [[높으신 분들]] 자리에 참석해야 하고, 성상납을 해야 한다는 구조를 알게 되면서 분개하여 연기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유학했다는 일화가 있다.], '특수분장'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국에서 전문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현재 '유영분장'이라는 특수분장 전문 학원을 개업하였고 지금은 대학에 출강하여 수많은 인력을 양성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그녀의 첫 작품인 셈이고[* 그 전에는 CF모델들의 분장을 담당했다 한다.], 이후 [[퇴마록]], [[닥터K]], [[쉬리(영화)|쉬리]], [[리베라 메]], [[각설탕(영화)|각설탕]], [[화려한 휴가]] 등등의 영화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한다.[* 이분은 후일 MBC [[성공시대]]까지 출연하셨다. 이때 은행나무 침대 촬영 중에 생긴 에피소드를 공개했는데 신현준이 황장군으로 분장한 채 화장실 찾다가 신현준을 본 노인 한 분이 놀라서 기절했다고.] 또한 특수효과를 총담당한 정도안도 이 영화 이전에 우뢰매 같은 여러 아동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하여 노하우를 쌓아 [[구미호]]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었고, 그 뒤 '데몰리션'이라는 특수효과전문회사를 세워 현재도 활동중이다.[[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617|정도안에 대한 기사1]][[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616|기사2]] 당시엔 CG(컴퓨터 그래픽)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특수효과는 분장 등을 포함한 조금 다른 파트였다. 또한 단순한 영화 촬영 감독에서 벗어나 영화 제작 전반에 능력을 보여준 최초의 감독(=강제규)이 등장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이 영화 이후, 한국에서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영화 개봉까지 제작사와 감독이 반반 부담하고 같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신씨네]]작품 뿐만 아니라 '강제규 감독 작품'이라는 점도 같이 부각 되었으며, 실제로도 제작사에서 감독의 능력을 높게 쳐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